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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최근 수정 : 2020년 10월 1일 (목) 01:48
2000년 이후 일본 총리
제84대
오부치 게이조
제85~86대
모리 요시로
제87~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제90대
아베 신조
제91대
후쿠다 야스오
제92대
아소 다로
제93대
하토야마 유키오
제94대
간 나오토
제95대
노다 요시히코
제96~98대
아베 신조
제99대
스가 요시히데

아베 신조2.jpg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직책 일본 제72대 내각관방장관
(2005년 10월 31일 ~ 2006년 9월 26일)
←전임후임→

일본 제90대 내각총리대신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전임후임→
일본 제96대 내각총리대신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4일)
←전임후임→
일본 제97대 내각총리대신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1월 1일)
←전임후임→
일본 제98대 내각총리대신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5일)
←전임후임→

출생일 1954년 9월 21일
출생지 도쿄도 신주쿠
본적지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부모 (부)아베 신타로, (모)아베 요코
배우자 아베 아키에
자녀 없음
학력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정당 자유민주당

개요

제98대 일본 총리이자 자유민주당 당수. 2006년에 한번 일본 총리를 역임했다가 이후 2012년에 다시 총리에 취임하고 2018년에 3선에 성공해서 2021년까지 총리대신 임기를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020년 8월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9월 15일에 총리직에서 사퇴하였고, 후임자로는 아베 신조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했던 스가 요시히데가 선출되었다.

집안

아베 신조 집안은 대대로 야마구치현 나가토(長門)시의 조그만 어촌마을인 오쓰군(大津郡) 유야초(油谷町)의 지주[1]였다. 아베의 할아버지 아베 간(安倍寬)은 1930년대 일본 중의원(衆議員)을 역임[2]했으며,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기시 노부스케이다. 아베의 부친은 외무상을 역임했던 아베 신타로이다.


발해계의 가계

  • "나는 조선(인)이다" 일본 아베신조 신임 총리의 부친 아베 신타로(1991년 사망) 전 외상이 평소 이같이 말했다고 세계일보가 일본 '슈칸아사히(週刊朝日)'를 인용해 보도했다.[3]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년을 지냈던 구보 우메(80)는 슈칸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전 외상이 고백한 집안 내력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구보는 "파파(아베 전 외상)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게는 말해줬다"면서 "(아베 전 외상 사망 직후) 입관될 때 이 사람의 골격을 보면서 정말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로 잰 듯이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완전히 한국(인)의 체형이다. (아베 전 외상) 스스로도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아베가의 기원에 대해 구보는 "아베가의 본류는 아오모리현이다. 아베 전 외상이 조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지금의 북한이 아니라 그 북쪽과 길림성 아래쪽에 있었던 발해"라면서 "11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의 무장이었던 아베가 지금 아베가의 선조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4]
  • 사토 에이사쿠는 그에 앞서 1957년부터 60년까지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사토 성을 타고 났으나 양자로 가서 성이 바뀜)의 친동생이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다.[5]
 "사토 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는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길래 400년 가까이 됐다고 했더니, '우리 가문은 그 후에 건너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반도의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자기네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山口)에 정착했다는 얘기였지요." 심수관 14대는 사토 전 총리가 자신의 집안에 비전되어 온 이같은 내력을 밝히며 그 자리에서 써준 휘호를 30년 넘도록 바로 그와 만났던 방에 지금껏 걸어놓고 있다. 사토는 그에게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의미의 '默而識之(묵이지지)'라는 말을 써 주고 떠났다.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표현이라는 것.[6][7]

대학

아베 총리는 도쿄에 위치한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명문대학이라 칭하기는 어려운 대학인데 이 학벌에 대해서 아베 총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8]이 있다. 아베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정치생활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후 고베 제철소에서 샐러리맨 생활을 했으며, 1982년에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9]했다.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던 1987년 6월, 자신보다 7살 어린 아키에(昭惠)와 결혼했다.[10] 1991년 부친 아베 신타로가 사망한 후, 1993년 아베 신타로의 야마구치 현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하여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재임 기간에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했다. 이 내각관방장관이라는 자리는 내각총리대신에 이은 제2인자의 자리이며, 내각관방장관이 관할하는 내각관방은 한국의 대통령비서실 및 국무조정실 등에 대응하는 기관으로 내각관방장관은 내각총리대신을 보좌하고 내각총리대신의 명을 받아 각 성을 통할하는 역할을 한다.

어쨌든 내각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이 시기에 아베 신조는 대북 강경책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에 김정일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열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 기관이 열세 명의 일본인을 납치하였는데, 여덟 명은 죽었고 다섯 명이 살아 있다."[11]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내용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인들은 엄청난 공분에 휩싸였다. 한 달 가량 후인 2002년 10월 15일 납북되었던 일본인들이 열흘 후에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조건 하에 일본에 귀국[12]하였는데 이때 아베 신조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이 일본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이 납북 일본인들의 가족까지 일본으로 송환하라며 북한을 압박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북한이라는 불량집단의 놀음에 놀아나 재일교포 북송등을 자행했던 기존 일본 정치인들과 달리 아베 신조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이미지를 주었다.

외교적 성과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상당한 개혁정책을 시행했는데, 도로공단 등의 공공기관 민영화를 시행해 매년 1조4000억엔 가량의 세금지출을 절약[13]했다. 또한 1엔만 있으도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회사법을 개정[14]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베 내각

1차 아베 내각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이 시기에 아베 신조는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07년 9월 12일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때 아베가 총리직을 사퇴한 이유로는 명시적으로는 '해상자위대가 인도양에서 급유활동을 하는 데 근거가 되는 법률인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연장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15]를 들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꾸준한 지지율 악화와 함께 아베 총리의 건강문제 또한 이유[16]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2차 아베 내각

2012년 2월 26일 ~ 2014년 12월 23일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승리하여 출범하였다. 내각관방장관에 2007년 총리 재임 시절 총무대신을 역임했던 스가 요시히데, 부총리 겸 재무대신에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인 아소 다로를 임명했다. 이후 이 둘은 현재까지도 아베 총리의 신임을 얻어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3차 아베 내각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1월 1일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승리하여 출범하였다.

4차 아베 내각

2017년 11월 1일 ~ 현재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승리하여 출범하였다. 고노 다로를 외무상에 임명하였으며, 2019년 9월 11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환경대신에 임명[17]했다. 건강 악화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020년 8월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2020년 9월 15일자로 아베 신조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같은 당 소속의 내각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가 차기 총리가 되었다.

정책

경제(아베노믹스)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하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경제이다.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을 일컬어 아베노믹스(아베 + (Eco)nomics)라 하는데 이 아베노믹스의 큰 줄기는 세 가지 화살로 불리는 세 개의 정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극적 통화정책, 확대 재정정책, 장기 성장전략.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나 아베노믹스는 그 규모와 실천력 그리고 결과에서 기존의 일본 총리들이 시행했던 정책과 차이가 있다.

  • 적극적 통화정책

통화정책이라 함은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화폐를 많이 발행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자동차, 부동산 등 자금을 빌려서 하는 소비가 늘어나고, 이자율이 하락해서 기업 투자가 늘어나며, 환율이 하락하기에 수출이 증가한다. 따라서 성장률이 상승하며 국민소득이 증가한다. 물론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이후 디플레이션이 문제였고 인플레이션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인플레이션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쨌든 아베 총리는 총리 취임 이전에 윤전기(화폐발행기계)를 돌려서라도 적극적으로 통화를 공급[18]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예고대로 적극적 통화정책을 실시했다. 이런 적극적 통화정책은 즉각적으로 외환시장에서 엔화의 평가 절하를 불러왔는데 2012년 11월 월평균 엔화 가치는 달러당 81.05엔에서 2013년 5월에는 달러당 100.99엔으로 6개월 만에 대략 24퍼센트 만큼 하락[19]했다. 그에 따라 이 기간동안 수출이 급속히 증가했음은 사실이다.

  • 확대 재정정책

정부지출을 늘리면 국민소득은 자연히 증가한다. 여기서 정부지출은 정부에 의한 물품구입 및 투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복지수당의 확대나 공무원 봉급증대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했다. 이것이 공공 투자등에 투입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조치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고 심지어는 이웃 한국에서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경제'[20]라고까지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간과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의 정부 부채는 일본 국민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국채의 오직 6.4%만이 외국인이 소유이다. 한국의 외국인의 국채 보유비중이 16.9%에 달하는 것[21]과 비교했을때 일본 정부 채무의 양호함을 알 수 있다.

  • 장기 성장전략

앞의 두 정책은 단기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인데 반해 성장전략은 장기적인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개방을 확대, 신산업 육성, 노인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증가등을 내세웠다.[22]

  • 결과

대성공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8년 5월 일본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따르면 구직자 대비 구인자의 비율을 측정한 유효구인배율은 평균 1.5이며 기업과 인구가 밀집된 도쿄의 경우 2.0에 이르렀다[23]고 한다. 도쿄의 경우에는 기업이 뽑고싶은 사람의 수가 구직자보다 두배나 많은 것이고, 그야말로 일자리가 남아 도는 것이다. 반면 동일기간 한국의 유효구인배율은 0.6[24]으로 극심한 취업난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은 이론적 배경이 케인즈의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미국 공화당등 타국의 보수정당이 지향하는 민간주도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먼 경향이 있다. 이는 일본이던 한국이던 국가주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양국의 우파정당 또한 정부의 간섭과 공공부문 축소 등에 크게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상 '작은 정부', '공공부문 개혁'등을 추진했던 총리로는 사실상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유일한 실정이다.

사회

외국인 노동자 수용확대

2018년 말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구체적 내용은 취업 목적의 재류자격을 단순노동 등에까지 확대해 2019년 4월부터 외국인 근로자 수용규모를 늘리는 내용[25]을 담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해 아베 내각은 2019년 최대 4만7000명, 향후 5년간 최대 34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를을 수용해 일본 내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일손부족을 해결한다[26]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격렬한 반대가 일었는데 우선 자유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은 일본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국수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일본 내 취업자 계층 또한 노동공급 증가로 인한 임금하락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외교

미국과의 관계

동일 기간 이웃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미중간 줄타기 외교를 하고 후속 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중국 측에 더 기울어진 외교를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아베 내각은 전통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일본을 방문했을 때 극진히 대접[27]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에게 아베 신조 총리를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28]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아베 총리는 화웨이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과 달리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모든 공공기관은 중국제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명령[29]했다.

한편 아베 총리의 집권 기간동안 야당인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중국이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자문위원까지 역임[30]하며 친중 노선을 확실히 해 아베 총리와 대조가 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박근혜 대통령 재임시에도 썩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일례로 2014년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서툰 한국말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근혜 대통령님, 오늘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하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31]고 한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더더욱 관계가 좋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5월 9일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 오찬에서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단 것을 못먹는다'는 이유로 케이크를 먹지 않아 일본측 배석자들이 당황했다[32]고 한다.

특히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한국 개인의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하였는데, 이 판결 이후 한국일본의 관계는 더더욱 냉각되었다. 이 판결 이후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단행[33]했는데 자신의 동맹국들 간에 일어난 이러한 조치에 미국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묵인하였다. 아베 총리의 대미 외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아베 내각의 무역제재에 대해 한국의 민주당 정부는 노재팬운동으로 대응했다.

북한과의 관계

아베 총리는 내각관방장관 재임기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등 북한 김씨 정권에 대해 비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해왔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존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2018년 6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믿지 말라’고 조언[34]했다고 한다.

중국과의 관계

2019년 12월 23일 열린 일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홍콩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홍콩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자유롭고 개방된 홍콩의 번영이 중요하다고 지적[35]했으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포함한 중국 국내의 인권 상황에 대해 중국 정부가 투명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는 점도 언급[36]했다.

2020년 5월 26일에는 아베 총리가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 도중 우한폐렴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베 총리의 이 발언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반박[37]했다. 2020년 6월 10일에 아베 총리는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G7성명을 일본이 주도하도록 하겠다고 이야기[38]했다.

동일 기간 한국문재인 정부가 친중적인 스탠스를 취한 것과 달리 아베 내각은 반중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깃거리

  •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아베가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jpg

각주

  1. 『월간조선』, ‘조슈 사무라이 후예’ 아베, ‘제2의 維新’을 꿈꾼다
  2. 『월간조선』, ‘조슈 사무라이 후예’ 아베, ‘제2의 維新’을 꿈꾼다
  3. https://news.joins.com/article/2463782 아베 일본 총리 부친, "나는 조선인이다"
  4. https://mk.co.kr/news/home/view/2006/09/423939/ 아베 日총리 부친 "나는 조선인이었다" 고백
  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9423?no=49423 "일본 차기 총리 1순위 아베 신조는 한국계"
  6.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09/0004649602 `한국인 후예` 아베, 어쩌다 혐한 이끈 `우익 선봉장` 됐나
  7. 일본내 우파의 반발에도 박근혜와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내었다는 사실에는 눈감고 문재인 정권과 지소미아파기, 일본 자위대 레이더 조사, 신일본제철에 대한 압류등에 대한 반응이라는 제3자적 시각을 못가진 기사.
  8. 문화일보 2016 2016년 8월 5일
  9. 『월간조선』 2003년 8월호, 對北 강경책 주도 總理 후보 1위
  10. 『신동아』 2006년 9월 6알, 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11. 『월간조선』 2005년 magazine, 납치자 문제 때 對北 강경노선 주도, 차기 총리감으로 浮上
  12. 『월간조선』 2005년 magazine, 납치자 문제 때 對北 강경노선 주도, 차기 총리감으로 浮上<
  13. 『신동아』 2006년 9월 6알, 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14. 『신동아』 2006년 9월 6알, 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15. 동아일보, 2007년 9월 13일
  16. 한겨레, 2007년 9월 13일
  17. 연합뉴스 2019년 9월 10일
  18. 한국경제 12월 17일
  19. 박종규, 「 아베노믹스의 미래와 한국경제의 대응」, 『한국경제포럼』 제6권 제2호, 2013, p74
  20. 박종규, 「 아베노믹스의 미래와 한국경제의 대응」, 『한국경제포럼』 제6권 제2호, 2013, p77
  21. 미디어펜 2020년 4월 27일
  22. 박종규, 「 아베노믹스의 미래와 한국경제의 대응」, 『한국경제포럼』 제6권 제2호, 2013, p80
  23. BBC Korea 2018년 7월 26일
  24. BBC Korea 2018년 7월 26일
  25.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12615415688723
  26.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12615415688723
  27. 연합뉴스 2019년 5월 28일
  28. 조선일보 2019년 5월 20일
  29. 중앙일보 2020년 5월 27일
  30. news1 2016년 6월 27일
  31. 중앙일보 2014년 3월 27일
  32. 중앙일보 2019년 3월 21일
  33. 연합뉴스 2019년 7월 1일
  34. 동아일보 2020년 6월 22일
  35. 펜앤드마이크 2019년 12월 24알
  36. 펜앤드마이크 2019년 12월 24알
  37. MK증권 2020년 5월 26일
  38. 조선비즈 2020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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