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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최근 수정 : 2020년 1월 22일 (수) 19:17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는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歷史]를 장기 연재 중이다. 그 중에 148 ~ 166회는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인데, 여기에서는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시발점을 1543년으로 잡고, 그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지를 논한 글이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므로 여기에 소개한다.

개요

서기 1543년에 서양에서는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종래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논문을 간행하였고, 일본은 서양에서 전해온 철포(鐵砲)를 처음 입수한다. 이 해에 조선에서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 1495 ~1554)이 백운동 서원(白雲洞 書院)을 세웠다.[1]

일본은 이때부터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반면에, 조선은 성리학 외골수로 나아가 사대하던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양명학(陽明學)[2]도 이단이라며 배척하고, 과학 기술이나 상공업은 천하게 여겨 백안시하고, 성리학을 빙자한 예송논쟁 등의 권력투쟁에 함몰되어 결국에는 망국에 이르게 된다.

백운동 서원은 성리학의 비조 주희(朱熹, 1130 ~ 1200)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백록동(白鹿洞) 서원[3]을 본떠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전해 온 안향(安珦, 1243 ~ 1306)의 고향에 세운 성리학 교육기관으로 안향에 대한 제향도 올리던 사당을 겸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며, 퇴계 이황(李滉, 1501 ~ 1571)이 풍기군수를 할 때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왕의 현판 글씨를 받아 소위 사액서원[4]이 되었다. 이후 유사한 서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임진왜란(1592)은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과 벌인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명나라의 참전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조선은 이런 참담한 전화를 겪고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고,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서양문물을 접하고 와서 이를 소개하려던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의 미움을 사서 독살된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서도 부국강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망하고 없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소중화 의식에 젖어 권력투쟁이나 일삼다 나라를 망친 조선 성리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넘쳐난다. 부국강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끝없는 과거사 후벼파기와 시대착오적인 친일파 타령, 토착왜구 타령, 반일종족주의, 촛불시위, 거짓 선동 등을 통해 기필코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모리배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북한과 중국은 무슨 짓을 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굽신거리기나 하는 것도 더욱 문제다.

현대사에서 조선이 어떻게 하다 나라가 망했는지를 연구하는 "조선망국사"가 "독립운동사"보다 훨씬 더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독립운동사"의 진정한 교훈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독립운동을 벌여도 한번 빼앗긴 나라를 자력으로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마치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은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또다시 나라를 잃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기약없는 독립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148]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① 1543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149]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② 1543년 지구가 움직였다
[150]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③ 1543년 일본, 총을 손에 넣었다
[151]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④ 1543년 조선, 서원을 열었다
[152]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⑤ 세종, 천재의 시대와 칠정산역법
[153]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⑥이와미 은광과 조선인 김감불
[154]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⑦임진왜란과 로마로 간 소년들
[155]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上
[156]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中
[157]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下
[158]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⑨ 무본억말(務本抑末)과 조선 도공·上
[159]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⑨무본억말(務本抑末)과 조선 도공·下
[160]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⑩대원군 척화비와 이와쿠라 사절단
[161]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⑪청나라 조기유학생 '유미유동(留美幼童)'과 청일전쟁
[162]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⑫메이지유신의 주역 조슈 5걸(長州五傑)
[163]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⑬ 목숨을 건 일본의 혁명가들
[164]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⑭ 갑신년 겨울의 녹슨 총
[165]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⑮ 권력을 탐한 지도자, 고종
[166]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16)스스로 부활한 대한국인(大韓國人)


맨 마지막 회에는 독립운동보다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기술하고, 이것이 어쩌다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독립운동 자체보다 어떤 나라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투쟁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말했어야 했다. 김일성이 속했던 동북항일연군이 마치 대단한 조선독립운동 조직이었던 것처럼 말한 것이나, 공산주의 이념의 문제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잘못된 공산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서야 가능했다. 공산주의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남한 사람들도 일제시대보다 훨씬 못한 북한 김가왕조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박종인의 땅의 역사(歷史)]는 위 글의 전후로도 계속 이어지며 지금도 연재되고 있다.

[185] 정약용과 호찌민을 둘러싼 조작된 신화
을축년 대홍수 때 후손이 건져낸 다산 저작들 모아서
사후 100년 맞은 1934~1938년 '여유당전서' 첫 출간
생전에 정약용은 "내 글 못 퍼지게 해 달라"며 경계
근거 없는 주장을 수정하지 않는 시인, 학자들 탓에
대통령도 "호찌민이 목민심서 애독" 진실로 믿어
[194] 100년 전 한용운이 던진 화두, 각성(覺醒)
100년 전 만해 한용운이 던진 민족이 나가야 할 길 "각성하라"
1920년 3·1운동 공판정 "망국은 스스로 초래한 것"
1936년 수필 '반성'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않고 남 침략으로 사라졌나"
강제징집 당한 이에게 "죽지 말고 꼭 살아 있으라!"
만해가 평생 끌고간 화두 반성·각성·자각
100년이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한 메시지
[195] 성리학자 이황과 조선 학문의 자유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의 백운동서원 후임 군수 이황이 청원해 명종이 '소수서원' 명명
학문과 권력이 융합한 지식권력 국가의 성립
1566년에 쓴 '전습록 논변' 양명학을 '반주자학' 규정
이후 퇴계 문하에서는 양명학을 이단이라며 금기
선조 "양명학이 좋지 않나?" 류성룡 "거짓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 장수 "왜 양명학을 배우지 않나"… 조선 관리들은 결사반대
1623년 인조반정 겹치며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이 실종


함께 보기

각주

  1. 영주 소수서원(榮州紹修書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양명학(陽明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사액서원(賜額書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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