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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太后

1. 개요

청나라의 여성 섭정 정치인. 청나라를 파멸로 몰아간 인물로 존왕양이를 주장하며 근대화를 거부했다. 신해혁명이 발발하며 청나라는 몰락한다.

민비랑 약간 좀 비슷하다.

자금성에 서쪽 공간에 거주해서 별칭으로 서태후(효흠현황후)라고 불렸다.

( 서태후는 함풍제의 후궁이었지만 아들이 황제(동치제)가 되면서 황후로 승격되었다. 이게 청나라의 룰 중 하나)

동태후는 자금성 동쪽에 거주해서 동태후(효종현황후)다. (이쪽은 함풍제의 정실부인 황후였다.)

동태후가 살아 있을 때는 그나마 서태후가 동태후 눈치를 봤고

(그나마도 동태후는 다른 여타의 여자처럼(권력의 화신 서태후에 비해서는 훨씬) 권력 지향적이지 않았고, 또 정치적 센스도 서태후에 비해 떨어졌다.)

게다가 동태후 쪽이 정실부인이었고 정통성이나 권위가 높아서 서태후가 막 나가면 동태후는 서태후를 제지할 충분한 권능이 있었다.

(황제인 동치제도 친어머니인 엄격하기만 서태후보다 온화하고 마냥 너그럽기만 한 동태후 쪽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동태후 마저 죽자 서태후를 견제할 사람은 사라지고 완전히 혼자 권력을 장악했다.


황후나 황태후였지만 함풍제 이후 황제는 실권이 없었고, 서태후가 실권을 싹다 장악했기에 황제는 꼭두각시고,

서태후가 실질적인 청나라에 실권자 황제 거의 여제 같은 사람이었다.

굉장한 사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국민당군에 의해 서태후의 무덤도 도굴 당했는데

(건륭제와 서태후 릉이 털렸다 원래 강희제 릉도 털려고 했는데 침수 되서 도굴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강희제릉도 털린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는 이 폭거에 격노했고

(당연하다 자기 조상 묘를 파묘한 것이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릉도 부수고 그 안에 보물을 훔치고 그과정에서 유해까지 훼손했다.

그리고 서태후의 의중대로 어린이였던 푸이(자기가 컨트롤 하기 용의하니까) 가 황제가 된 것도 있다. 서태후는 푸이가 즉위하고 몇일 만에 죽는다.)

푸이가 국민당에 치를 떨고, 이 도굴 사건은 일본육군 주도에 괴뢰국 만주국에 협조해서 만주국황제가 되는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2.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