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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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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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문정
입법부
정부 형태
기본 정보[1]
면적
22,402,200㎢
수도
위치
공용어
인구 어림
291,000,000명명 (1990 년년)
인구 밀도
13명/㎢
통화
루블 (SUR)
통화기호
руб
민족
 • 설립
 • 해체
1922년 12월 30일
1991년 12월 26일
 • 설립
 • 해체
1922년 12월 30일
1991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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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가
현재의 국가

러시아어 :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 СССР
영어 :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USSR
한국어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 소비에트 연방(聯邦) / 소련(蘇聯) / 소(蘇)

1. 건국과 멸망

1917년 3월에 일어난 러시아 2월 혁명러시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혁명 이후 수립된 러시아 임시 정부는 1917년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붕괴하였고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이 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났지만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통합되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하였다.

(인류 최초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다. 그전에 파리코뮌이 있기는 했지만, 몇개월만에 붕괴 되었기 때문에 소련이 사실상 최초다.)

소련의 초대 지도자 레닌은 1924년 1월 21일에 사망하였고, 스탈린이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소련은 스탈린의 경제 정책과 강력한 정치 억압을 통하여 거대한 규모의 산업화를 이루어 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 전쟁이 발발하였다. 소련은 1945년 5월 9일 독소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1945년 8월 대일전에 참전하여 승리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소련과 중앙유럽 위성 국가들은 서방 세계에 맞서 냉전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양측 동맹국 사이에서 갈등, 긴장, 경쟁 상태가 이어졌다. 1986년,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통해 소련의 경제를 중흥시키려 하였다.
1991년 8월 공산당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소련 국민들의 반발로 실패한 뒤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현재 러시아도 영토로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지만, 소련은 그것보다 더 컸다.

(우크라이나 등 연방에서 떨어져 나간 여러 공화국도 소련의 영토였으니)

당시 육지면적의 1/6이 소련의 영토였다고 한다.

2. 국명과 상징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라는 명칭은 소비에트 (러시아어: Совет)에서 나왔는데, 이는 러시아어로 '평의회' 또는 '노동자-농민 평의회'를 뜻한다. 노동자, 농민, 군인의 공동체 조직인 소비에트는 직접민주제, 간접민주제를 거부하고, 인민민주 상향식 선거를 통해 일당제 체제 하에서 평의회 대의원을 선출한다.


작게는 각 생산수단 및 소공동체에서부터 크게는 모스크바의 최고 소비에트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에 걸쳐 설치되어 있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체제는 블라디미르 레닌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파리 코뮌의 형태와 러시아 특유의 소비에트 제도를 본따서 만든 제도라고 밝혔다. 이러한 체제가 카를 마르크스가 최초로 주장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조금 다른 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비에트 제도의 경우 노동자, 농민, 혁명가들로 구성된 '혁명적 당'이 장기간 일당 독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치 제도가 하나의 '정통적 체제'로 대변된다는 점에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원형은 '당'을 사회주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에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민주적 폭력'을 실행하기 위한 체계화 된 조직으로 묘사했고, 이러한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정당 독재는 공산주의 사회에 진입한 후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의 소비에트 제도는 공산당 일당 독재의 장기화했고 이러한 제도를 바탕으로 모든 공산주의적 정책을 실행했다. 학문적으로 보면 소련이 기준에 따라 민주주의에 들어갈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의 성립기와 말기를 제외하면 소련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였다.

2.1. 국기

소련국기.png

소련의 국기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2:1이다. 바탕의 색은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색이다. 금색의 낫과 망치는 각각 농민과 노동자를 상징하였고, 그 위의 붉은 별은 5대륙 노동자의 단결을 의미하였다. 1955년에는 낫과 망치의 모양이 기존의 크기보다 조금 작아졌으며, 1980년에는 국기 배경색이 진홍색에서 조금 연한 진홍색으로 변했다.

2.2. 국장

소련의 국장은 1923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소련이 해체된 1991년까지 사용되었다.

국장 가운데에는 지구를 배경으로 금색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으며 지구 아래쪽에는 떠오르는 금색 태양이, 지구 위쪽에는 빨간색 별이 그려져 있다.

국장 양쪽을 밀 이삭이 감싸고 있으며 빨간색 리본이 이를 묶고 있다. 빨간색 리본에는 소련의 표어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구가 15개 공화국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이 소련 국장은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형적인 문법 처럼 되서 중공이나 북한 등 여러 공산국가들의 국장도 이런 문법을 따르고 있어서 비슷한 편이다.(이 문법에서 자기네 상징이나 자랑거리를 넣는다던지 하는 식이다. 북한 같은 경우는 백두산 수풍댐처럼)

3. 역대 최고 지도자들

4. 가입국이었던 국가들

러시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5. 생활수준

공산세계의 종주국이어서 여타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좋은 편이었지만 자유세계와 비교해서는 수준이 현격히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기사를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획경제를 했는데 경공업 소비재는(계획경제 자체가 관료가 모든 것을 예측한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중시한 중화학공업 무기산업 등보다

특히 일반인들이 쓰는 소비재는 세세하고 변화무쌍하기에 계획경제하에서 수요 공급 예측을 더더욱 맞힐 수가 없었다.)

는 항상 부족했다. 식료품 등을 사려고 항상 줄을 서야 했고, 소련의 아줌마는 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줄을 서기 시작하면 그냥 무지성으로 같이 줄을 섰다. 왜냐면 무엇이든 항상 부족했기 때문.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 중 상당수가 소련 시대를 그리워 하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 경제는 마피아가 지배하는 거의 파탄 수준에 이르렀고,

소련 시절에는 넉넉하지는 않아도 국가에 기대어서 적은 월급이라도 나오고 생활이 가능하기는 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도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 특히 2000년도에는 소련시대로 돌아간다면 소련 체재 유지를 지지하겠다는 수치가 최정점에 이르렀다. 이따금씩 경제위기가 오면 소련이 그립다는 향수 여론이 높아진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였던 나라에서는 사회주의 였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동독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이 있으며(오스탈기 = 동쪽 + 노스텔지어 ), 탈북자조차 이런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나 중공사람이 북한을 여행가거나 방문하면 소련붕괴전이나 개혁개방 전에 자기네 나라 모습을 보면서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6. 소련의 붕괴

견강부회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소련의 공산혁명 성공과 공산제국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주요 원인을 한국이 제공했다는 주장이 있다.

소련의 공산혁명은 고종의 친러 정책이 일본의 반감을 불러오고, 이것이 1905년 러일전쟁의 원인이 되었는데, 제정 러시아의 패배가 엄청난 충격이 되어 제정의 붕괴와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산권 붕괴와 관련해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당시 한국과 국교가 없던 소련, 중공, 동구권 공산국가 들이 모두 참가하는데, 특히 동구권 국가 대표들이 서울에 와서 한국의 발전상을 처음으로 보고 놀라서 자신들도 더 이상 공산주의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영향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 직후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시작해 동구 공산정권 붕괴, 소련 붕괴가 거의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 외에도 소련 제국의 붕괴는 1984년 북한에 온 소련인 1명이 판문점을 관광하다 남으로 탈출하면서 벌어진 총격전에서[3]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남으로 탈출한 소련인은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소련은 미국측에 강력하게 송환을 요구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응하여 대소 강경책을 취하면서 미소간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군비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경제력이 달리는 소련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붕괴했다는 주장이다..

1979년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이후 10여년간 아프간 수렁에 빠진 것이 붕괴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서방 진영과 한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소련과 동구권은 1984년 LA 올림픽을 보이콧하여 올림픽은 두 차례 연속 반쪽으로 진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1988년 올림픽은 공산권 국가와 외교관계가 없는 한국의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데, 공산권이나 서방이나 더 이상의 반쪽 올림픽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북한만 제외하고 공산권 국가도 모두 참여하게 된다.

7. 참고 자료

8. 각주

  1. 자세한 사용법은 틀:이전 나라 정보 참조.
  2. 더 많은 지도 사진 보기
  3. 蘇(소)청년 板門店(판문점) 넘어 美亡命(미망명) 요청 1984.11.24 동아일보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