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과 관련된 해방전 또는 해방 직후의 1차 자료들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논란 많은 인물 김일성의 행적에 대한 실체 파악을 위해서는 조작, 가공되기 이전의 1차 자료를 가능한 한 많이 발굴하여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주 시절 청소년기

당시 기록

"육문학교(毓文學校) 생도(生徒) 김성계(金聖桂)"가 바로 북한 김일성이며, 김성주(金聖柱)를 잘못 적은 것임.
1930년 3월 14일 국민부(國民府)는 산하의 남만한인청년총동맹(南滿韓人靑年總同盟), 남만농민동맹(南滿農民同盟), 남만여자교육회(南滿女子敎育會) 등 3개 단체를 통합시켜 동성조선인농민총동맹(東省朝鮮人農民總同盟)을 조직한다. 이 동맹의 무송(撫松)·안도(安圖) 지방을 담당할 지부동맹조직위원(支部同盟組織委員)으로 김성주(金成柱)가 선출됨.
1930년 6월 27일에 창립된 국민부 소년단(國民府 少年團) 제3분대장 김성주(金成周)는 북한 김일성으로 보임.
이종락(李鍾洛) 등이 1931년 1월 28일 구속되자 조선혁명군 사령부(朝鮮革命軍 司令部)는 와해된다. 3월말경 고할신도 체포되고, 잔존 세력이 세화군(世火軍)을 조직했다는 외사경찰보(外事警察報) 제124호(1932년 11월)의 기사. 1931년 3월 세화군(世火軍)의 군정위원회(軍政委員會) 위원으로 김성주(金成柱)가 나온다.

후일 증언 또는 기록

p.7 (p.589)에 김일성의 육뮨중학 시기및 1932년 여름까지의 일에 대한 증언이 나옴.

만주 항일 빨치산 시기

소련군 시절

해방 직후

친인척 관련 기록

부친 김형직

숙부 김형권

외조부 강돈욱

외숙 강진석

김일성 관련 표제어

처와 자손 및 가족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