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인도차이나 전쟁 | |
기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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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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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화국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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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국 서독 |
지원국 몽골인민공화국 |
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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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 응오딘지엠 남베트남 즈엉반민 미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베트남 민주공화국 호찌민 베트남 민주공화국 똔득탕 |
병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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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000명 (1968) 남베트남 850,000명 (1968) |
461,000명 북베트남 287,465명(1968.1) |
피해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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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남전쟁(Vietnam War)은 1956~1975년까지 월남민주공화국(북월, 월맹)이 월남공화국(남월, 월남)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이다. 제2차 인도지나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함께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군대가 남월에 파병되어 북월과 싸웠지만 북월을 지원하던 소련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제한적인 작전만을 펼칠 수 밖에 없었고, 남월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조직인 베트콩들에 의해 고전하게 된다.
결국 미국에서 크게 일어난 반전운동과 여론에 밀려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고, 미국의 군사적 명성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다.)
미군의 철수 이후 남월은 고전하다가 북월에게 패망하였다.
미국 사회에도 징병제 거부, 반전운동 히피문화 세대갈등 정부불신, 참전용사의 ptsd 사회부적응 문제 등등 다방면으로 중차대인 영향을 미친 전쟁이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은 미국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은 전쟁이다. (미국 현대사를 다루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베트남 전쟁에 막대한 비중을 할애한다.)
그에 비해 6.25는 미국에서 관심이 덜해서 6.25는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 (forgatten war) 이라고도 불린다.
한국군이 미군에 합세해 파병된 전쟁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이어 대한민국이 경험한 대규모전쟁이다. 이전의 한국전쟁이 자국에서의 전쟁이었다면, 대규모원정, 파병은 월남전이 시초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썼던 명칭은 월남전(越南戰)이며 지금도 국군에서 만든 자료에서 월남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6.25때 남들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우리도 남들을 도우러 간다는 것에서 감동감화한 한국인들이 많았다.
월남전쟁 참전으로 미국에서 받은 돈이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가기 전에 베트남 현지의 무더운 더위에 적응하기 위한 특별훈련을 하고 베트남에서도 현지 더위에 단련이 되었는데, 이게 중동건설 붐 때 중동의 살인적 더위를 이겨내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국군은 정말 잘 싸웠다. 어떤면에서 미군보다도 더. 미군이 6.25때는 솔직히 한국군이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여서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때 벤 클리트 장군은 북진통일을 위해 물자 지원을 해달라는 이승만 대통령에서 지원을 거절하며 (현리전투 등에서 무참히 패주하면서 물자를 중공군에게 헌납했다) 한국군은 최고위 지휘관부터 말단장교까지 지휘능력이 형편없다. 웨스트포인트 같은 육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전쟁중에 웨스트포인트를 그대로 이식한 4년제 육사를 만들었고, 그 첫 기수가 전두환 기수인 11기이다. 4년제 이후 육사 기수들이 많이 참전한게 베트남전쟁이다.),
베트남전쟁 때 처음으로 미군이 한국군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창작물에서는 M16을 든 미군 병사가 UH-1 헬리콥터를 타고와 정글 속
(베트콩은 열대 우림 정글에 은거해서 부비트렙 등을 만드는 등 지형을 이용해서 게릴라전을 펼쳤는데, 지형이 이러다 보니 숨을 곳도 많고, 미군의 우월한 무기가 우위를 발휘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그래서 미군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기 위해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 했다.
베트남 참전용사는 고엽제의 후유증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이미지로 대표되고 있다.
전면전쟁이라기 보다는 전쟁의 대부분은 자유월남에서 호치민 루트를 통해 베트콩들이 벌인 게릴라전을 진압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그렇기에 지리산 빨치산을 진압했던 경험이 있던 한국군이 그 경험을 살릴 수 있어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였기도 하다.
월남이 패망하는 건 파리 강화 이후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 한 이후에 대대적으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쳐들어간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베트남전쟁 이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월남의 적화패망까지 넓게 봐서 베트남전쟁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베트남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중국은 베트남에 여러번 쳐 들어 갔다. 베트남 전쟁 직후에도 쳐들어갔다 망신만 당했다. 이때는 도리어 직전의 적인 미국이 베트남을 도왔다.),
몽골제국 (3번 베트남 원정을 했지만 실패했다. 일본 등과 더불어 몽골의 침략을 격퇴한 몇안돼는 나라),
프랑스 (오랫 동안 베트남을 식민지배 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결국 베트남은 독립했다.)
, 미국 등 세계 최강 대국을 결국 다 격퇴 시켰다.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나라다. 베트남 사람은 자존심도 강하다.
미국과 한국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긴 전쟁이기에. 요구하지도 않는데 한국의 좌익 대통령들은 베트남에게 사과를 하며, 호치민을 찬양하거나 외부의 침략군(미군)을 격퇴했다고 찬양하거나, 혹 대통령 되기전에 월남이 패망한 것에 희열을 느꼈다는 사랍도 있다.
2. 북한의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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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날짜를 알 수 없는 이 사진은 북한 조종사들이 북베트남 공군 사령부의 정치위원이었던 판 카치 히(Phan Khac Hy) 소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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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6일 전쟁 참전 용사인 두옹 반 다우(Duong Van Dau)가 북한 조종사 전사자 추모비를 걸어가고 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북한 조종사 14명의 유해는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위치한 유일한 외국인 전쟁 영웅 묘지에 묻힌 뒤 북한의 요청으로 2002년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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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공군 위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월맹의 요청이 아니라 공군 조종사들의 실전 경험 습득과 파월 한국군에 대한 정보 습득 등 북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 참전을 요청하여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 베트남전 사례로 본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의미 rfa.org 2024.10.30
3. 패망의 원인
월남의 패망의 원인은 여러 요인을 이야기할 수 있다. 월남은 북월(월맹)보다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앞서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북월의 무수히 많은 간첩들이 월남에 들어와서 사회 곳곳을 장악하였고,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하였으며 여기에 선동당한 국민들이 있었다.
미군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월남을 지원하며 그들과 같이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월남군은 베트콩만 만나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망했고 무기를 팔아먹는 일까지 하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부정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높은 세금으로 농민들의 민심을 드끓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나며 국민들은 정부에 등을 돌렸고, 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시위가 지속되었다. 심지어 월남의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월맹으로 도주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월맹에 의해서 통일이 된 이후 좌파 지식인들은 월맹 공산당의 숙청의 대상1순위로 정신교육대(?)에 교육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정신교육을 받으며 숨을 거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21년 한국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계, 종교계, 전교조, 민주노총, 문화계, 체육계 등에 모든 곳을 장악한 좌파 세력들은 그들이 원하는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첫번째 정신교육 대상 1순위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4. 관련 자료
월남 내부에서 여론을 뒤흔들던 반체제 인사들이 적화통일 후 ‘완장’을 얻기는커녕 누구보다도 먼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되었다.월남 패망의 1등공신이었던 쭝딘쥬 역시 공산당에 의해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된다. 쭝딘쥬는 그곳에서 하루 100g 가량의 배급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1980년 중반에 사망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배신당한 통일운동가의 비참한 말로이다.
- [특집] 북한核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 - 파리平和협정에서 월남 패망까지 李大鎔 前 駐베트남 대사관 공사, 월간조선 2006년 10월호
- 反美 폭력시위·反共인사 암살
- 월맹軍 남침 순간 평화협정 휴지돼
5. 각주
- ↑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 ↑ 2.0 2.1 2.2 2.3 Lewy 1978, pp. 450–3.
- ↑ Associated Press, 3 April 1995, "Vietnam Says 1.1 Million Died Fighting For North."
- ↑ Soames, John. A History of the World, Routledge, 2005.
- ↑ "books.google.com.vn"
- ↑ 《North Korea fought in Vietnam War》. BBC News. 31 March 2000. 18 October 2015에 확인함.
- ↑ 7.0 7.1 Charles Hirschman et al., "Vietnamese Casualties During the American War: A New Estimate,"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December 1995.
- ↑ Thayer 1985, chap. 12.
- ↑ 9.0 9.1 (2005 & 2006). "Heart of Darkness: The Vietnam War Chronicles 1945–1975". (Box set, Color, Dolby, DVD-Video, Full Screen, NTSC, Dolby, Vision Software), 321 minutes
- ↑ Rummel, R.J, “Table 6.1A. Vietnam Democide : Estimates, Sources, and Calculations, ” (GIF).
- ↑ 11.0 11.1 Tucker, Spencer E. The Encyclopedia of the Vietnam War: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ABC-CLIO. ISBN 1-85109-961-1
- ↑ Vietnam Veterans Memorial Fund. “Memorial Day ceremony at The Wall to commemorate eight additions to The Wall and honor all members of America's Armed Forces who have made the ultimate sacrifice ”, 《PR Newswire》, 2 May 2016 작성.
- ↑ (May 2010). "America's War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 ↑ Anne LelandMari–Jana "M-J" Oboroceanu (26 February 2010). "American War and Military Operations: Casualties: Lists and Statistic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 ↑ Lawrence 2009, pp. 65, 107, 154, 217
- ↑ Kueter, Dale. Vietnam Sons: For Some, the War Never Ended. AuthorHouse (21 March 2007). ISBN 978-1425969318
- ↑ 《월남전 참전자회 총회 및 전우의 밤》. 2021-11-22.
- ↑ 《Australian casualties in the Vietnam War, 1962–72 | Australian War Memorial》. Awm.gov.au. 29 June 2013에 확인함.
- ↑ The Encyclopedia of the Vietnam War: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By Spencer C. Tucker "https://books.google.com/?id=qh5lffww-KsC"
- ↑ 《Overview of the war in Vietnam | VietnamWar.govt.nz, New Zealand and the Vietnam War》. Vietnamwar.govt.nz. 16 July 1965. 2013년 7월 26일에 원본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9 June 2013에 확인함.
- ↑ 《Chapter III: The Philippines》. History.army.mil. 24 February 2014에 확인함.
- ↑ 《Asian Allies in Vietnam》. Embassy of South Vietnam. March 1970. 18 October 2015에 확인함.
- ↑ 《America Wasn’t the Only Foreign Power in the Vietnam War》. 10 June 2017에 확인함.
- ↑ Shenon, Philip, “20 Years After Victory, Vietnamese Communists Ponder How to Celebrate ”, 23 April 1995 작성. 24 February 2011 확인. The Vietnamese government officially claimed a rough estimate of 2 million civilian deaths, but it did not divide these deaths between those of North and South Vietnam.
- ↑ “fifty years of violent war deaths: data analysis from the world health survey program: BMJ ”, 23 April 2008 작성. 5 January 2013 확인.
- ↑ Obermeyer, Murray & Gakidou 2008.
- ↑ Sliwinski estimates 240,000 wartime deaths, of which 40,000 were caused by U.S. bombing. (Sliwinski 1995, p. 48). He characterizes other estimates ranging from 600,000–700,000 as "the most extreme evaluations" (p. 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