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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金佐鎭

1. 개요

김좌진(金佐鎭, 1889년 11월 24일 ~ 1930년 1월 24일)은으대한제국일제강점기 시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그의 아들이 김두한, 그의 손녀가 김을동이며, 증손자가 송일국이다.

이 사람도 문제적 인물이다.

전형적으로 항일만 하면 뭔짓을 해도 괜찮아 식 미화가 되는 인물인데,

만주에서 군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무장강도를 하고, 동포들에게 강제로 군자금을 거의 삥 뜯었다. 조폭 비슷하게.

삥을 뜯을 때만 무기를 사용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 주민들을 징병()(징자는 강제를 의미한다.)까지 했고, 자기 단체로부터 탈퇴하려는 자들을 때려 죽이기도 했다.(빈주사건)

만주벌의 마왕이라는 소리까지 들었고,

공산주의자에 의해 죽었는데, 그전에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청산리 대첩이라고 하는데, 독립군의 봉오동 등과 더불어 전과를 엄청 부풀렸다는 의혹이 있다.

인조이재팬(네이버에서 2000년 초중반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교류하라고 만든 플랫폼) 에서 일본인들과 이걸로 키베를 떴는데 한국인들이 말그대로 처참하게 발렸다.

일본인들은 실제 당대 역사 자료를 1차 사료 등을 가져 와서 말을 하는데, 한국인들은

막연하게 한국의 역사교육을 토대로 이럴 것이다 하다가 완전 발린 것이다.

이때의 충격으로(한국이 반일 역사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알게 되서)

역사적으로 국까 일뽕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많았다.


독립군의 청산리 전투봉오동 전투 등은 대부분 전과를 300배정도 부풀린 것이다.

애초에 일본군은 정규군으로 무기나 무장 군기 등을 갖춘 상태고, 독립군이라는 건 무장만 봐도 개개인에게 소총 조차 하나씩 나눠줄 수 없는 상태였으니, 그런 일본군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는 건 환타지라고 보면 된다.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일본군을 이겼다 이거랑 사실 크게 차이가 없다. 봉오동 같은 걸로 영화까지 만드는 걸 보면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봉오동 같은 경우는 일본군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단 한명 죽었다.)


2. 김좌진 신화의 실체

홍범도가 도대체 누구길래 난리일까? 2023.09.01 김용삼 대기자 특별방송 (KNL 강용석 나이트 라이브)


당신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의 실체


우리가 몰랐던 독립군의 실체 (1920~)

대한민국 주류사학계는 김좌진을 일본에 대항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적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김좌진은 10대 때부터 교육과 언론을 통해 애국 계몽 운동을 펼쳤으며 이후 "무력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 판단, 북간도에서 독립군을 키웠다고 전하고 있다.

1920년에는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는데 이것이 바로 청산리 전투이다. 이 전투로 일본군 1200명이 전사했지만, 독립군은 60명 전사, 90명 부상에 그쳐 어마어마한 대승을 거뒀다고 알려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일본군 1,200여 명을 사살과 독립군 전사자 100여 명으로 표시하고 있다)


김좌진1.png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청산리 전투를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그들과 대결한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였고,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

정의

19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 · 나중소(羅仲昭) · 이범석(李範奭)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

결론

... 이와 같이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은 26일 새벽까지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측은 전사자 100여 명을 내었다.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그들과 대결한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

...


그런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는 민족 의용 독립운동가들, 이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가 사실은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도적 떼와 다름없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것은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은 빼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힘없는 조선 민중들을 약탈하고 살해한 유명 독립운동가들. 국가에서 이들을 아무리 미화하고 독립유공자로 추겨세운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그들의 실체는 없어 지지 않는다.


신민부원 체포.png
독립을 파는 불량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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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함께 보기


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