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편집 요약 없음
53번째 줄: 53번째 줄:
정주영은 이명박의 면접은 마음에 들었지만 학생운동전력이 영 탐탁치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이명박은 그해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된다.
정주영은 이명박의 면접은 마음에 들었지만 학생운동전력이 영 탐탁치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이명박은 그해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된다.


==현대건설 입사 후==
===현대건설 입사 후===
현대건설 입사 이후 이명박은 승진가도를 달린다. 1972년 서른 둘의 나이로 상무가 됐고, 1974년 전무, 1975년 부사장, 서른 일곱이었던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 이런 승진은 국내 주요 기업들 중에 전무후무하며 셀러리맨의 신화라는 말이 나돌았다.
현대건설 입사 이후 이명박은 승진가도를 달린다. 1972년 서른 둘의 나이로 상무가 됐고, 1974년 전무, 1975년 부사장, 서른 일곱이었던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 이런 승진은 국내 주요 기업들 중에 전무후무하며 셀러리맨의 신화라는 말이 나돌았다.



2020년 7월 8일 (수) 03:47 판

대통령 취임식
이명박
李明博
약력
직책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전임후임→
출생일 1941년 12월 19일
출생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후쿠이도정

학력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학사)
가족 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
가족 배우자 김윤옥
가족 장녀 이주연, 차녀 이승연,

3녀 이수연, 장남 이시형

종교 개신교
재임 중 국무총리 한승수(2008.2.29~2009.9.28)

정운찬(2009.9.29~2010.8.10)

김황식(2010.10.1~2013.2.26)


생애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을 포항에서 보냈으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하였다. 그 후에 현대건설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학 재학 시절

1964년 고려대학교 4학년 재학 중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해 징역살이를 했다. 나중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이명박 스스로가 밝힌 시위 주동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양국간 민족사적인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는데 단순한 경제 논리로 덮어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

현대건설 입사

대학을 졸업한 후 1965년 5월 현대건설에 입사를 지원했다. 필기시험에 무난히 합격한 후 인사부장 면접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인사부장은 이명박에게 이명박의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뽑아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취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화가났는지 이명박은 집으로 돌아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은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던 이낙선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민정비서관 이낙선은 국가체제에 도전한 사람들은 당연히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명박은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가로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2]

라는 말로 응수했는데, 며칠 뒤에 청와대 비서실은 이명박이 현대건설에 입사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후 6월에 현대건설 최종임원면접이 있었는데 당시 현대건설의 회장인 정주영이 면접관으로 참여했고 피면접자인 이명박과 조우하게 되었다.

다음은 이명박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면접 내용이다.

정주영: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명박: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정주영: 왜 그런가
이명박: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정주영: 말은 참 잘하는구만

(옆에 임원을 보면서)요즘은 말만 번지르르한 건달들이 많아.[3]

정주영은 이명박의 면접은 마음에 들었지만 학생운동전력이 영 탐탁치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이명박은 그해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된다.

현대건설 입사 후

현대건설 입사 이후 이명박은 승진가도를 달린다. 1972년 서른 둘의 나이로 상무가 됐고, 1974년 전무, 1975년 부사장, 서른 일곱이었던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 이런 승진은 국내 주요 기업들 중에 전무후무하며 셀러리맨의 신화라는 말이 나돌았다.

대통령 재임 시 사건사고

북한의 도발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긍정적 평가

경제성장

이전의 노무현 정부 5년간의 경제성장률은 4.3%로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돌았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을 모토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초기 4년간의 경제성장률은 3.1%로 세계 경제성장률 2.8%보다 높았다. [4] 이는 세계적인 불황과 해외부문의 경기변동에 민감한 경제구조하에서 이루어낸 성과로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훌륭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한미 FTA

이전 정부부터 진행되던 한미 FTA협상을 마무리하고 타결했다. 이는 분업과 교환으로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경제이론의 측면에서 볼때 타당한 결정이며 당시 제기되었던 반대파의 논리는 그 이론적 기반이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미 외교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From now on, I will give you information.

이는 한미관계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5]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을 실시하여 홍수 때마다 반복되던 재해를 방지하게 되었으며, 여름 장마철에만 강수량이 많고 그 외에는 부족했던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부정적 평가

박근혜 탄핵의 주역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란표 (62표 가량) 때문이며, 여기에는 친이계 거의 모두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움직이는데는 공개적으로 탄핵에 찬성 의사를 밝힌 이명박 본인의 뜻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탄핵이 이루어지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감옥행이었다. 차기 정권을 반드시 자기 손으로 창출하겠다는 헛된 망상이 만들어낸 비극이며, 이런 망상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위기를 초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 - 중앙일보 2016. 8. 28.
“이명박, 차기정권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월간 조선> - 국민일보 2016. 8. 29.


문재인 "與의원 상대로 탄핵서명 받아야"
안철수 "탄핵 정치적으로 좌고우면 안돼"
與시국회의, 朴대통령 징계요구안 제출
친이계모임서 "국민뜻 무조건 따르라", 보수대위기 수습 리더십 보여야


이명박이 허가한 종편의 거짓 선동이 사기 탄핵의 발단

이명박 정권 때 허가된 종편(종합편성채널)은 [6] 대개 친이반박(親李反朴)적 보도 경향을 보였다. 박근혜에 대한 근거없는 부정적 보도가 잦았고, 그 중에서 특히 최서원(최순실) 관련 허위 또는 왜곡 보도가 사기 탄핵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 TV 조선
이진동
엄성섭
손석희와 다이빙벨 이종인
최서원의 태블릿PC
  • 채널 A
  • MBN

박근혜 탄핵을 응원

  • 이명박 국민 과같은심정 박근혜 대통령 국민의 뜻 잘 받아들였스면.[7]
  • 이명박 "탄핵안 가결, 국민의 뜻 따른 것"

그리고 그 결과

  • MB자택 앞서 촛불집회…'이명박 구속하라' 외쳐[8][9]


  • ‘최순실 게이트’에 입 연 MB “참담하고 부끄럽다. [10]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둔 오늘(21일) 국립현충원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남긴 말입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꽉 막힌 현 시국을 어떻게 풀면 좋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겁니다.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생각도 밝혔는데요.

  • 주진우 기자는 “각하, 편히 쉬십시오. 가시는 길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라면서 “이명박 각하, 감옥에 가서는 제발 예수 믿으세요. 돈만 믿지 마시고”라고 덧붙였다.[11]

각주

  1. 이명박, <신화는 없다>, 1판, 1995, p71
  2. 이명박, <신화는 없다> (1판), 1995, p90
  3. 이명박, <신화는 없다> (1판), 1995, p91
  4.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20221/44200315/1
  5.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601100018
  6. 대한민국의 종합편성채널 위키백과
  7. https://www.yna.co.kr/view/AKR20161218051351001 MB "朴대통령 뭐라고 하든 국민 뜻 따르면 돼"
  8.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31/2017123100513.html MB자택 앞서 촛불집회…'이명박 구속하라' 외쳐
  9. 2017123100511_0.jpg MB구속, 국정원 적폐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10.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81218 "참담하고 부끄럽다"
  11.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500035 주진우, 이명박 구속 지켜보며 던진 한 마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대수 성명 재임
제1공화국
1 이승만 1948년 7월 24일 ~ 1952년 8월 14일
2 이승만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3 이승만 1956년 8월 15일 ~ 1960년 4월 27일
제2공화국
4 윤보선 1960년 8월 12일 ~ 1961년 5월 16일
제3공화국
4 윤보선 1961년 5월 16일 ~ 1962년 3월 23일
5 박정희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6 박정희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7 박정희 1972년 12월 27일 ~ 1978년 12월 26일
제4공화국
8 박정희 1971년 7월 1일 ~ 1972년 12월 26일
9 박정희 1978년 12월 27일 ~ 1979년 10월 26일
10 최규하 1979년 12월 6일 ~ 1980년 8월 16일
11 전두환 1980년 8월 27일 ~ 1981년 2월 24일
제5공화국
12 전두환 1981년 2월 25일 ~ 1988년 2월 24일
제6공화국
13 노태우 1988년 2월 25일 ~ 1993년 2월 24일
14 김영삼 1993년 2월 25일 ~ 1998년 2월 24일
15 김대중 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16 노무현 2003년 2월 25일 ~ 2004년 3월 12일
2004년 5월 14일 ~ 2008년 2월 24일
17 이명박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18 박근혜 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
19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20 윤석열 2022년 5월 10일 ~ 2027년 5월 9일 [1]
  1.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