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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에 [[독립문]]이 있는 독립공원에서 [[서대문형무소]]로 가는 길.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권과 그 추동세력, 좌파의 대한민국 역사관을 보여준다. 특히 투쟁과 민중 혁명으로서 독립운동은 공산당의 투쟁의 역사이며 이승만은 이를 찬탈하여 정부수립을 하였으나 북한은 건국으로 한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통성있는 국가인 북한과 이승만정부와의 관계와 중국과의 관계 개선<ref>1919년이후 100년간의 사건중에 중국과 수교가 들어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 항일 투쟁으로 2건의 중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뽑고 있다. 여기서 연합한 군대는 장개석의 국민당군이다. 이들의 역사관에서 중국군으로 간주함을 볼때 대만이 중국에 속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중국공산당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보여준다.</ref>에 기반하고 있다. [[빨치산]]운동의 피어린 발자취로서, 일제로부터 투쟁의 독립의 길과 [[이승만]]정부<ref>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정부</ref>로부터 투쟁의 민주의 길의, 두 길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끝은 북한과의 민족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서대문에 [[독립문]]이 있는 독립공원에서 [[서대문형무소]]로 가는 길.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권과 그 추동세력, 좌파의 대한민국 역사관을 보여준다.  
 
특히 투쟁과 민중 혁명으로서 독립운동은 공산당의 투쟁의 역사이며 [[이승만]]은 이를 찬탈하여 정부수립을 하였으나 [[북한]]은 건국으로 한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통성있는 국가인 북한과 이승만정부와의 관계와 중국과의 관계 개선<ref>1919년이후 100년간의 사건중에 중국과 수교가 들어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 항일 투쟁으로 2건의 중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뽑고 있다. 여기서 연합한 군대는 장개석의 국민당군이다. 이들의 역사관에서 중국군으로 간주함을 볼때 대만이 중국에 속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중국공산당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보여준다.</ref>에 기반하고 있다. [[빨치산]]운동의 피어린 발자취로서, 일제로부터 투쟁의 독립의 길과 [[이승만]]정부와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부터 투쟁과 민주의 길의, 두 길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끝은 북한과의 민족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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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 서문.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 서문.jpg |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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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 독립선언1919.jpg | ▲ 독립선언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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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 2 28독립선언1919.jpg | ▲ 2.28독립선언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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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 3 1운동1919.jpg | ▲ 3.1운동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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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 파리장서운동1919.jpg | ▲ 파리장서운동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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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919.jpg | ▲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919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 의열단 결성1919.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 의열단 결성1919.jpg | ▲ 의열단 결성 [[1919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 철혈광복단15만원사건1920.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 철혈광복단15만원사건1920.jpg | ▲ 철혈광복단15만원사건 [[1920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 봉오동전투1920.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 봉오동전투1920.jpg | ▲ 봉오동전투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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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 청산리전투1920.jpg | ▲ 청산리전투 [[1920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0 김익상 조선총독부투탄의거1921.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0 김익상 조선총독부투탄의거1921.jpg | ▲ 김익상 조선총독부투탄의거 [[19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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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1 조선공산당창립1925.jpg | ▲ 조선공산당창립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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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2 6 10만세운동1926.jpg | ▲ 6.10 만세운동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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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3 신간회창립1927.jpg | ▲ 신간회창립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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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4 간도공산당사건1927.jpg | ▲ 간도공산당사건 [[192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5 원산총파업1929.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5 원산총파업1929.jpg | ▲ 원산총파업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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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6 광주학생운동1929.jpg | ▲ 광주학생운동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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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7 만주사변1931.jpg | ▲ 만주사변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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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8 한인애국단조직1931.jpg | ▲ 한인애국단조직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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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19 이봉창동경의거1932.jpg | ▲ 이봉창동경의거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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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0 윤봉길의거1932.jpg | ▲ 윤봉길의거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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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1 쌍성보전투1932.jpg | ▲ 쌍성보전투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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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2 대전자령전투1933.jpg | ▲ 대전자령전투 [[1933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3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3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jpg | ▲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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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4 동우회사건1937.jpg | ▲ 동우회사건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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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5 중일전쟁1937.jpg | ▲ 중일전쟁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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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6 조선민족전선연맹1937.jpg | ▲ 조선민족전선연맹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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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7 국가총동원령1938.jpg | ▲ 국가총동원령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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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8 조선의용대조직1938.jpg | ▲ 조선의용대조직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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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29 2차세계대전1939.jpg | ▲ 2차세계대전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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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0 한국광복군창성1940.jpg | ▲ 한국광복군창성 [[1940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1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1941.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1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1941.jpg | ▲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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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2 단파방송청취사건1942.jpg | ▲ 단파방송청취사건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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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3 조선어학회사건1942.jpg | ▲ 조선어학회사건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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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4 카이로회담1943.jpg | ▲ 카이로회담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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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5 조선건국동맹결성1944.jpg | ▲ 조선건국동맹결성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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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6 8 15해방1945.jpg | ▲ 8.15해방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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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7 서대문형무소사상범석방1945.jpg | ▲ 서대문형무소사상범석방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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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8 조선건국준비위원회발족1945.jpg | ▲ 조선건국준비위원회발족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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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39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환국1945.jpg | ▲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환국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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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0 신탁통치반대운동1946.jpg | ▲ 신탁통치반대운동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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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1 9월총파업1946.jpg | ▲ 9월총파업 [[1946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2 여운형피살1947.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2 여운형피살1947.jpg | ▲ 여운형피살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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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3 제주4 3사건1948.jpg | ▲ 제주4.3사건 [[1948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4 김구남북연석회의참석1948.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4 김구남북연석회의참석1948.jpg | ▲ 김구남북연석회의참석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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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5 5 10남한단독선거1948.jpg | ▲ 5.10남한단독선거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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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6 대한민국정부수립1948.jpg | ▲ 대한민국정부수립 [[1948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1948.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1948.jpg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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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8 여수 순천사건1948.jpg | ▲ 여수 순천사건 [[1948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9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설치1948.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49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설치1948.jpg |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설치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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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0 국회프락치사건1949.jpg | ▲ 국회프락치사건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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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1 김구피살1949.jpg | ▲ 김구피살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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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2 6 25한국전쟁1950.jpg | ▲ 6.25한국전쟁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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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3 부산정치파동1952.jpg | ▲ 부산정치파동 [[1952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4 휴전협정1953.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4 휴전협정1953.jpg | ▲ 휴전협정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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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5 진보당사건1958.jpg | ▲ 진보당사건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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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6 3-15의거1960.jpg | ▲ 3-15의거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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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7 4 [[19혁명1960.jpg | ▲ 4.19혁명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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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8 5 16군사쿠데타1961.jpg | ▲ 5.16군사쿠데타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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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59 민족일보사건1961.jpg | ▲ 민족일보사건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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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0 인민혁명당사건1964.jpg | ▲ 인민혁명당사건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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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1 베트남전쟁파병1964.jpg | ▲ 베트남전쟁파병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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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2 한일회담1965.jpg | ▲ 한일회담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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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3 동베를린간첩단사건1967.jpg | ▲ 동베를린간첩단사건 [[196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4 3선개헌반대운동1969.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4 3선개헌반대운동1969.jpg | ▲ 3선개헌반대운동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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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5 전태일분신자살1970.jpg | ▲ 전태일분신자살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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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6 광주대단지사건1971.jpg | ▲ 광주대단지사건 [[1971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7 7 4남북공동성명1972.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7 7 4남북공동성명1972.jpg | ▲ 7.4남북공동성명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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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8 10월유신1973.jpg | ▲ 10월유신 [[1973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9 6 23평화통일선언73.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69 6 23평화통일선언73.jpg | ▲ 6 23평화통일선언73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0 인민혁명당재건사건1974.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0 인민혁명당재건사건1974.jpg | ▲ 인민혁명당재건사건 [[1974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1 민청학련사건1974.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1 민청학련사건1974.jpg | ▲ 민청학련사건 [[1974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2 3 1민주구국선언1976.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2 3 1민주구국선언1976.jpg | ▲ 3 1민주구국선언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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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3 8 18판문점도끼만행사건1976.jpg | ▲ 8 18판문점도끼만행사건 [[1976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4 부마항쟁1979.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4 부마항쟁1979.jpg | ▲ 부마항쟁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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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5 10 26사건1979.jpg | ▲ 10 26사건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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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6 12-12쿠데타1979.jpg | ▲ 12.12쿠데타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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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6 5-18광주민주화운동1980.jpg | ▲ 5-18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7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1982.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7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1982.jpg | ▲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 [[1982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8 아웅산폭발사건1983.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8 아웅산폭발사건1983.jpg | ▲ 아웅산폭발사건 [[1983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9 5-3인천사태1986.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79 5-3인천사태1986.jpg | ▲ 5.3인천사태 [[1986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0 박종철고문치사사건1987.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0 박종철고문치사사건1987.jpg | ▲ 박종철고문치사사건 [[198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1 이한열사망사건1987.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1 이한열사망사건1987.jpg | ▲ 이한열사망사건 [[198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2 6-10민주항쟁1987.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2 6-10민주항쟁1987.jpg | ▲ 6.10민주항쟁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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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3 6-29선언1987.jpg | ▲ 6.29선언 [[198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4 대통령직선제1987.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4 대통령직선제1987.jpg | ▲ 대통령직선제 [[1987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5 문익환목사방북1989.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5 문익환목사방북1989.jpg | ▲ 문익환목사방북 [[1989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6 남북한UN동시가입1991.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6 남북한UN동시가입1991.jpg | ▲ 남북한UN동시가입 [[1991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7 한중수교1992.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7 한중수교1992.jpg | ▲ 한중수교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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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8 김일성사망1994.jpg | ▲ 김일성사망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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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89 지방자치제전면실시1995.jpg | ▲ 지방자치제전면실시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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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0 OECD가입1996.jpg | ▲ OECD가입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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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1 IMF구제금융요청1997.jpg | ▲ IMF구제금융요청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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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2 6-15남북공동선언2000.jpg | ▲ 6-15남북공동선언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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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3 남북정상회담2007.jpg | ▲ 남북정상회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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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4 연평도포격사건2010.jpg | ▲ 연평도포격사건 [[2010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5 세월호침몰2014.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5 세월호침몰2014.jpg | ▲ 세월호침몰 [[2014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6 민중총궐기백남기농민사건2015.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6 민중총궐기백남기농민사건2015.jpg | ▲ 민중총궐기백남기농민사건 [[2015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7 촛불혁명2016.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7 촛불혁명2016.jpg | ▲ 촛불혁명 [[2016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8 남북정상회담2018.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98 남북정상회담2018.jpg | ▲ 남북정상회담 [[2018년]]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 끝.jpg
파일:독립과 민주의 길 끝.jpg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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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민중 역사관==
독립과 민주의 길에 놓인 동판들은 근현대사에서 사건들중 픽업한 사건들로 역사관에 따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은 민족 민중이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는 혁명의 역사관으로 그 끝은 한민족이 되는 북한의 민족통일이다.
* [[이영훈]]의 역사비평. 국사학의 위기
<center><youtube>https://youtu.be/bvxkK625qaU</youtube></center>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ZZEZygYteL5IQo4Pyy-wsXV1Pomat0kb 이영훈의 역사비평] 재생목록
==독립문의 상징성 곡해==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u>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u>”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 이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 간 나라였다. 중국 황제가 승인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의 진이 빠졌다. 심지어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사신이 한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이 떨었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자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나라가 매번 거덜 날 지경이었다.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 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영은문]](迎恩門)이었다.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조선은 마침내 중국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영은문]]을 헐어 없애고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바로 그 자리에 세운 것이 [[독립문]]이다. 이 독립문을 엉뚱하게 항일 상징으로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은 반일(反日)이 정치 수단이 된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민주화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잊혔다. 마침내 [[6·25]] 남침을 [[김일성]]과 함께 모의하고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을 살상한 [[마오쩌둥]]을 가장 존경한다는 대통령 두 명([[노무현]] [[문재인]])까지 등장했다.<ref>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3/04/E5DEQMJFFBAE5NBKG25OLTYYEY/ <nowiki>[양상훈 칼럼]</nowiki> 反中 상징 독립문 앞에서 反日 만세 부른 文</ref><ref>https://images.chosun.com/resizer/OaxAzynBHTf_8Cs0RDuiuM69Ig0=/616x0/smart/cloudfront-ap-northeast-1.images.arcpublishing.com/chosun/7OGPNFL7WBFONGJYV4LTXLWW4Y.jpg</ref>
“독립을 하면 나라가 미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 조선 인민이 합심을 못하여 서로 싸우고 서로 해하려고 할 지경이면 구라파에 있는 [[폴란드]]란 나라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다. [[미국]]같이 [[독립]]이 되어 제일 부강한 나라가 되든지, 폴란드 같이 망하든지 사람 하기에 있는지라. 조선 사람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이완용]]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한 연설 내용이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사무위원장으로서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으며, 그 후 독립협회 제2대 회장이 된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91601033011000001 이완용의 독립문, 문재인의 新자주</ref>
독립문 건립 12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월 21일 오전 11시 서울 독립문 앞에서 열렸다. [[시민단체]]인 [[미래대안국민행동]]과 [[국민노동조합]]이 주최하고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독립문]]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열망하며 지은 것임을 상기시키고, 중국의 대한(對韓)영향력 확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대만]]의 인권활동가와 [[홍콩]]민주화운동가가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대만 인권활동가는 “<u>한국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식민지 인 것 같다</u>”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정치 단체들이 매우 친중화 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 단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ref>https://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1219&Newsnumb=20201111219 "한국은 마치 중국 식민지인 것 같아...정치단체들, 돈 벌기 위해 중국공산당과 협력 원하는 듯"(대만 인권활동가)</ref> 
==같이보기==
* [[좌파 종북/대표적 시민단체]]
* [[좌파 종북 친북 시민단체]]
* [[좌파 종북/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참가단체]]
* [[종북 좌파/용산참사 범국민추모위원회 참가단체]]
* [[덕산빌딩]]






[[분류:역사관]][[분류:좌파]][[분류:문재인]][[분류:종북]][[분류:공산주의]][[분류:통일]][[분류:혁명]]
[[분류:역사관]][[분류:좌파]][[분류:문재인]][[분류:종북]][[분류:공산주의]][[분류:통일]][[분류:혁명]][[분류:시민단체]][[분류:친북]]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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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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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목) 21:04 기준 최신판

서대문에 독립문이 있는 독립공원에서 서대문형무소로 가는 길.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권과 그 추동세력, 좌파의 대한민국 역사관을 보여준다.

특히 투쟁과 민중 혁명으로서 독립운동은 공산당의 투쟁의 역사이며 이승만은 이를 찬탈하여 정부수립을 하였으나 북한은 건국으로 한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통성있는 국가인 북한과 이승만정부와의 관계와 중국과의 관계 개선[1]에 기반하고 있다. 빨치산운동의 피어린 발자취로서, 일제로부터 투쟁의 독립의 길과 이승만정부와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부터 투쟁과 민주의 길의, 두 길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끝은 북한과의 민족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길 조성

  • 조성일 : 2019.8.13
  • 조성자 :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 행 사 : 독립지사는 △학병으로 징집된 후 탈출해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유길 지사(100세) △항일 결사체인 태극단에 가입해 활동한 정완진 지사(92세)가 참여했다. 민주지사로는 △서울대 교수 재직시 민주화운동으로 두 번 해직되고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한완상 지사(83세) △자유 언론 수호 투쟁으로 해직됐으며 ‘보도되지 않은 민주 인권 사건일지’를 제작해 구속된 박종만 지사(76세)가 참여했다. 광복절인 15일 저녁 7시30분 주무대에선 심용환 작가의 역사이야기와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공연이 어우러진 역사콘서트 ‘1919, 그때 우리는!’이 개최.[2]

동판

‘독립과 민주의 길’은 독립지사 30명의 풋프린팅 동판과 주요 현대사를 담은 100개 동판으로 조성됐다. 서대문독립공원내 독립관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에 이르는 약 100m 구간엔 1919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의 역사를 포함해 100가지 주요 사건을 이미지로 표현한 동판 100개가 설치됐다.[3]


민족 민중 역사관

독립과 민주의 길에 놓인 동판들은 근현대사에서 사건들중 픽업한 사건들로 역사관에 따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은 민족 민중이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는 혁명의 역사관으로 그 끝은 한민족이 되는 북한의 민족통일이다.

  • 이영훈의 역사비평. 국사학의 위기

독립문의 상징성 곡해

시진핑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 이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 간 나라였다. 중국 황제가 승인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의 진이 빠졌다. 심지어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사신이 한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이 떨었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자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나라가 매번 거덜 날 지경이었다.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 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영은문(迎恩門)이었다.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조선은 마침내 중국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영은문을 헐어 없애고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바로 그 자리에 세운 것이 독립문이다. 이 독립문을 엉뚱하게 항일 상징으로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은 반일(反日)이 정치 수단이 된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민주화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잊혔다. 마침내 6·25 남침을 김일성과 함께 모의하고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을 살상한 마오쩌둥을 가장 존경한다는 대통령 두 명(노무현 문재인)까지 등장했다.[4][5]

“독립을 하면 나라가 미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 조선 인민이 합심을 못하여 서로 싸우고 서로 해하려고 할 지경이면 구라파에 있는 폴란드란 나라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다. 미국같이 독립이 되어 제일 부강한 나라가 되든지, 폴란드 같이 망하든지 사람 하기에 있는지라. 조선 사람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이완용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한 연설 내용이다. 이완용독립협회 사무위원장으로서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으며, 그 후 독립협회 제2대 회장이 된다.[6]

독립문 건립 12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월 21일 오전 11시 서울 독립문 앞에서 열렸다. 시민단체미래대안국민행동국민노동조합이 주최하고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독립문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열망하며 지은 것임을 상기시키고, 중국의 대한(對韓)영향력 확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대만의 인권활동가와 홍콩민주화운동가가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대만 인권활동가는 “한국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식민지 인 것 같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정치 단체들이 매우 친중화 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 단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7]

같이보기

각주

  1. 1919년이후 100년간의 사건중에 중국과 수교가 들어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 항일 투쟁으로 2건의 중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뽑고 있다. 여기서 연합한 군대는 장개석의 국민당군이다. 이들의 역사관에서 중국군으로 간주함을 볼때 대만이 중국에 속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중국공산당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보여준다.
  2. http://www.sij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005 서대문독립공원에 ‘독립과 민주의 길’ 조성
  3. http://www.sij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005 서대문독립공원에 ‘독립과 민주의 길’ 조성
  4.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3/04/E5DEQMJFFBAE5NBKG25OLTYYEY/ [양상훈 칼럼] 反中 상징 독립문 앞에서 反日 만세 부른 文
  5. 7OGPNFL7WBFONGJYV4LTXLWW4Y.jpg
  6.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91601033011000001 이완용의 독립문, 문재인의 新자주
  7. https://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1219&Newsnumb=20201111219 "한국은 마치 중국 식민지인 것 같아...정치단체들, 돈 벌기 위해 중국공산당과 협력 원하는 듯"(대만 인권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