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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차대전]] 중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대여법(Lend-Lease)<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A%B8%B0%EB%8C%80%EC%97%AC%EB%B2%95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ref>에 따라 유럽의 연합국과 소련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소 지원 물자 수송 경로는 크게 북극해(Arctic Convoys), 페르시아만 회랑(Persian Corridor) 및 태평양 수송로(Pacific Route) 3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통해서는 일본 북쪽으로 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갔다. 일본이 이 경로의 전쟁물자 운송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1941년 4월 체결된 일소중립조약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소련 배를 공격해서는 안 되나 무기를 실었을 경우는 검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경로로는 무기가 아닌 다른 군수물자들이 주로 지원되었다. | |||
푸가초프호는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미국이 건조했던 Liberty Ship의 하나로 일소중립조약에 의해 일본의 저지를 받지않고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가 소련국적이라야했으므로 소련으로 임차된 것으로 보인다. | |||
*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A%B8%B0%EB%8C%80%EC%97%AC%EB%B2%95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 | *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A%B8%B0%EB%8C%80%EC%97%AC%EB%B2%95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 | ||
* [https://en.wikipedia.org/wiki/Lend-Lease Lend-Lease] wikipedia | * [https://en.wikipedia.org/wiki/Lend-Lease Lend-Lease] wikipedia | ||
* [https://en.wikipedia.org/wiki/Pacific_Route Pacific Route]] wikipedia | |||
* [https://ru.usembassy.gov/world-war-ii-allies-u-s-lend-lease-to-the-soviet-union-1941-1945/ World War II Allies: U.S. Lend-Lease to the Soviet Union, 1941-1945] 주소 미대사관 자료 | * [https://ru.usembassy.gov/world-war-ii-allies-u-s-lend-lease-to-the-soviet-union-1941-1945/ World War II Allies: U.S. Lend-Lease to the Soviet Union, 1941-1945] 주소 미대사관 자료 | ||
* [https://www.rferl.org/a/did-us-lend-lease-aid-tip-the-balance-in-soviet-fight-against-nazi-germany/30599486.html 'We Would Have Lost': Did U.S. Lend-Lease Aid Tip] | * [https://www.rferl.org/a/did-us-lend-lease-aid-tip-the-balance-in-soviet-fight-against-nazi-germany/30599486.html 'We Would Have Lost': Did U.S. Lend-Lease Aid Tip] |
2020년 11월 6일 (금) 04:48 판
「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의 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2][3][4][5]
원래 1943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에서 건조하여 소련에 임대한 배이다. 미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미국이 건조한 배를 탔다는 것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쿠바로 출동하였다.[1] 1977년 폐선되었다.
건조할 당시의 처음 이름은 Louis Agassiz였다.
- 러시아 농민반란 지도자 Yemelyan Ivanovich Pugachev (Russian: Емелья́н Ива́нович Пугачёв; c. 1742 – 1775)의 이름을 딴 배이다.
개요
이 배는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에서 Louis Agassiz 라는 이름으로 1943년 3월 23일 건조를 시작하여 20여일 후인 4월 13일에 건조 완료되었으며, Emilian Pugachev라는 이름으로 4월 21일에 소련에 인도되었다.[6]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화물선 다수가 독일의 어뢰와 U보트에 의해 침몰 당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규격화하여 양산한 모듈들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속성으로 건조하던 Liberty Ship[7] 중의 하나였다.
미국이 건조한 배가 소련으로 인도된 배경
미국은 2차대전 중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대여법(Lend-Lease)[8]에 따라 유럽의 연합국과 소련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소 지원 물자 수송 경로는 크게 북극해(Arctic Convoys), 페르시아만 회랑(Persian Corridor) 및 태평양 수송로(Pacific Route) 3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통해서는 일본 북쪽으로 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갔다. 일본이 이 경로의 전쟁물자 운송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1941년 4월 체결된 일소중립조약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소련 배를 공격해서는 안 되나 무기를 실었을 경우는 검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경로로는 무기가 아닌 다른 군수물자들이 주로 지원되었다.
푸가초프호는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미국이 건조했던 Liberty Ship의 하나로 일소중립조약에 의해 일본의 저지를 받지않고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가 소련국적이라야했으므로 소련으로 임차된 것으로 보인다.
-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
- Lend-Lease wikipedia
- Pacific Route] wikipedia
- World War II Allies: U.S. Lend-Lease to the Soviet Union, 1941-1945 주소 미대사관 자료
- 'We Would Have Lost': Did U.S. Lend-Lease Aid Tip
- The Balance In Soviet Fight Against Nazi Germany?
참고 자료
- EMELYAN PUGACHEV, IMO 5103106 balticshipping.com
- EMELIAN PUGACHEV - IMO 5103106 - Ship Photos and Ship Tracker
- Liberty ship launched as LOUIS AGASSIZ transferred to Russia as EMELIAN PUGACHEV 21.4.1943 / Oregon Shpbuilding, Portland OR, Yard # 665
- 665 Louis Agassiz EC2-S-C1 1624 9 24-Mar-43 13-Apr-43 21-Apr-43 20 8 28 To Russia 1943 as Emilian Pugachev, scrapped 1977
- EMELYAN PUGACHEV (IMO 5103106) - General Cargo Vessel Tracking
- 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 Wikipedia
- Liberty Ships built by 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 Portland, Oregon and by Kaiser - Vancouver, Vancouver, Washington for U. S. Maritime Commission 1941-1945
- Tracking Soviet Ships: October 23, 1962 » The Fourteenth Day Emelyan Pugachev : 1962년 가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출동
- Liberty ship - Wikipedia
- 화물선이 어떻게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나? : 리버티 쉽 이야기 Mustard 2017. 11. 14.
각주
- ↑ 1.0 1.1 Tracking Soviet Ships: October 23, 1962 » The Fourteenth Day Emelyan Pugachev : 1962년 가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출동
- ↑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 8. 26 종합5면
- ↑ [Why]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 조선닷컴 2009/06/19
- ↑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pp.18~19 :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 미의회도서관
- ↑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元山(원산)까지 수송" 45년 당시 蘇(소)해군중위 니주니코프 證言(증언) 1992.08.30 동아일보 4면
- ↑ Oregon Shipbuilding, Portland OR
- ↑ Liberty ship Wikipedia
- ↑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