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945년 8월 15일 독립 이후 38도선 이북의 지역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소련 군정을 실시하였다. 소련군 점령 후 수개월이 지나서부터는 조선인들의 인민위원회에 행정을 이양하고 소련군은 이를 감독하는 간접적인 형태를 취하였으나 이를 소련이 조선인의 자치를 허용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직접 통치를 한 미군정에 비해 소련 군정은 그 형태가 간접적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미군정에 비해 훨씬 더 내정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 지령문에 나온대로 소련은 처음부터 북한에 단독의 공산국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9월초에 스탈린은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에의 제88독립보병여단에서 5년간 자신들이 교육과 훈련을 시킨 진지첸 (김일성) 대위를 모스크바로 불러 면접시험을 본 후 북한 지도자로 결정하였다. 북한의 소련군정 기간은 북한지역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고, 무수한 정치공작을 통해 국내에 아무 정치적 기반이 없던 자신들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김일성을 지도자로 만드는 일을 했다. 이를 위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여러 정치 조직을 만들어서 김일성을 책임자로 앉혔다. 소련군정 시기는 토지개혁 등 북한 지역의 공산화와 소련의 대리인 김일성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은 체제 선택권도, 지도자 선택권도 가질 수 없었고, 소련이 강제로 만들어준 공산체제와 김일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소련군정 기간에 시행된 북한의 주요 정책이나 법안들은 모두 소련이 결정했고, 표면적으로는 김일성이 위원장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북조선인민위원회가 결정해서 시행하는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북한 정권 공식 출범 당시에도 헌법은 물론 초대내각의 인선까지 소련이 주도권을 행사했고, 그후로도 평양의 소련대사관이 군정청의 역할을 넘겨받았으며, 특경부를 설치하여 김일성 등 북한 정권 요인들을 감시했다.

반면에 미군정은 조선인 지도자를 표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대신 새로 수립되는 한국 정부의 체제나 지도자는 모두 한국인들이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했다.

북한의 주권은 "일본천황 -> 소련군정 -> 김일성 -> 김일성 일족"으로 이전되어 왔지만 한국의 주권은 "일본천황 -> 미군정 -> 한국 국민"으로 이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개

해방직후

소련군의 만행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조치 시행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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