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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푸가초프호.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푸가초프호(Pugachev 號).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의 [[김일성|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 1961년 4월 13일 캐나다 뱅쿠버에서 찍힌 사진이다.<ref>[http://www.shipspotting.com/gallery/photo.php?lid=2627807 EMELIAN PUGACHEV - IMO 5103106]  - Ship Photos and Ship Tracker</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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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62-10-20 Pugachev.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쿠바로 향하던 소련군 화물선 Pugachev호가 10월 20일 로스앤젤레스 서편에서 포착되었다.<ref name="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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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의 [[김일성|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634493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 8. 26 종합5면</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9/2009061901137.html?dep0=chosunnews&dep1=hotnews&dep2=news02 <nowiki>[Why]</nowiki>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 조선닷컴  2009/06/19</ref><ref>[http://www.loc.gov/rr/asian/SovietKorean/78.pdf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pp.18~19 : [http://www.loc.gov/rr/asian/SovietKorean.html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 미의회도서관]</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3000209204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8-30&officeId=00020&pageNo=4&printNo=21928&publishType=00020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元山(원산)까지 수송" 45년 당시 蘇(소)해군중위 니주니코프 證言(증언)] 1992.08.30 동아일보 4면</ref>  
「'''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의 [[김일성|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634493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 8. 26 종합5면</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9/2009061901137.html?dep0=chosunnews&dep1=hotnews&dep2=news02 <nowiki>[Why]</nowiki>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 조선닷컴  2009/06/19</ref><ref>[http://www.loc.gov/rr/asian/SovietKorean/78.pdf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pp.18~19 : [http://www.loc.gov/rr/asian/SovietKorean.html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 미의회도서관]</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3000209204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8-30&officeId=00020&pageNo=4&printNo=21928&publishType=00020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元山(원산)까지 수송" 45년 당시 蘇(소)해군중위 니주니코프 證言(증언)] 1992.08.30 동아일보 4면</ref>  

2020년 11월 6일 (금) 10: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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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의 소련군 소련의 만주와 북한 침공 북한의 소련 군정
「푸가초프」호 동진공화국 조각명단 해방정국 지도자 지지율
해방직후 북한 상황 북한 초대 내각 북한의 친일파 청산
남북분단의 현실화 과정 북한정권 감시기구 《특경부》 6.25 남침
《김일성 1912~1945》 (서평) 김일성(金一成, 1888~1926) 김정일 생년
김형직 (부친) 강반석 (모친) 김형권 (삼촌)
김혜순 (전처) 김정숙 (처) 김슈라 (차남)
김영주 (동생) 백두혈통 김일성 영생교
푸가초프호(Pugachev 號).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로, 1961년 4월 13일 캐나다 뱅쿠버에서 찍힌 사진이다.[1]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쿠바로 향하던 소련군 화물선 Pugachev호가 10월 20일 로스앤젤레스 서편에서 포착되었다.[2]

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3][4][5][6]

원래 1943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에서 건조하여 소련에 임대한 배이다. 미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미국이 건조한 배를 탔다는 것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쿠바로 출동하였다.[2] 1977년 폐선되었다.

건조할 당시의 처음 이름은 Louis Agassiz였다.

개요

이 배는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에서 Louis Agassiz 라는 이름으로 1943년 3월 23일 건조를 시작하여 20여일 후인 4월 13일에 건조 완료되었으며, Emilian Pugachev라는 이름으로 4월 21일에 소련에 인도되었다.[7]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화물선 다수가 독일의 어뢰와 U보트에 의해 침몰 당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규격화하여 양산한 모듈들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속성으로 건조하던 Liberty Ship[8] 중의 하나였다.

미국이 건조한 배가 소련으로 인도된 배경

미국은 2차대전 중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대여법(Lend-Lease)[9]에 따라 유럽의 연합국과 소련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소 지원 물자 수송 경로는 크게 북극해(Arctic Convoys), 페르시아만 회랑(Persian Corridor) 및 태평양 수송로(Pacific Route) 3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통해서는 일본 북쪽으로 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갔다. 일본이 이 경로의 전쟁물자 운송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1941년 4월 체결된 일소중립조약[10]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소련 배를 공격해서는 안 되나 무기를 실었을 경우는 검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경로로는 무기가 아닌 다른 군수물자들이 주로 지원되었다.

푸가초프호는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미국이 건조했던 Liberty Ship의 하나로 일소중립조약에 의해 일본의 저지를 받지않고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가 소련국적이라야했으므로 소련으로 임차된 것으로 보인다. 종전 후에는 소련에 매각된 것인지 양여된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소련이 계속 사용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전쟁물자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은 독일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11] 따라서 1945년 8월 일소중립조약을 파기하고 벌인 대일본전도 개전할 형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의 대소 지원물자 수송로.[11] 태평양 방면으로는 주로 블라디보스톡 항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베링해협을 통과해 북극해 쪽으로 들어갔다.

참고 자료

Liberty ship launched as LOUIS AGASSIZ transferred to Russia as EMELIAN PUGACHEV 21.4.1943 / Oregon Shpbuilding, Portland OR, Yard # 665
665 Louis Agassiz EC2-S-C1 1624 9 24-Mar-43 13-Apr-43 21-Apr-43 20 8 28 To Russia 1943 as Emilian Pugachev, scrapped 1977


각주